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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하운 시 연구

  • 발행년도
    2008년
  • 발행처
    부경대학교
  • 저자
    김현태
  • 소장기관
    부경대학교 도서관
  • 학위논문사항
    (석사)학위논문 부경대학교 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전공 2008. 8
  • 링크
    http://www.riss.kr/link?id=T11369235
  • 첨부파일
서론

8.15 광복으로 식민지에서 벗어남으로써 우리민족은 모든 분야에서 역사적 전환점을 맞이하였고, 우리의 문학사를 인식함에 있어서 8.15 해방은 중요한 분기점이 되었다. 해방을 기점으로 전·후기를 구분할 때, 그 차이를 각각 타율성과 자율성에서 찾을 수 있다. 즉 해방 이전은 일제 식민지 시대와 맞물려 있었기 때문에 우리문학은 주체적인 전통성과 무관하게 외래적인 것에 의존했다. 그러나 해방 이후에는 주체적 자각과 실천을 지니게 되었다. 민족이념의 지향 목표를 민족 재건과 민족성 회복에 두었던 것이다.
1948년 남북한이 각기 단독정부를 수립하고 2년이란 시간을 채우기도 전 한국전쟁이 일어났다. 전쟁은 한민족에게 민족상잔이라는 뼈아픈 시련의 의미를 가져다주었다. 그리고 갖가지 아픔, 질병, 굶주림, 외로움, 분노, 원한, 절망 등이 고스란히 민중의 몫으로 던져졌다. 문단의 정신구도 상황도 전쟁의 포화에 잿더미가 되어버리고 새로운 인식의 출발이라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시사적 공간에 있어서도 기존의 시적 질서를 해체하고 새롭게 변화된 현실을 수용함에 따라 여러 갈래의 시경향이 모색되었다. 이를 네 부분의 범주로 구분해보면, ‘전쟁체험을 형상화 한 시’, ‘문명 비판적 성향의 시’, ‘현실참여 의식을 드러낸 모더니즘 시’, ‘자연과 개인의 서정을 다룬 순수시’로 특정지을 수 있다.
한하운의 시작 활동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첨예한 대립과 더불어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과 같은 불화의 세계에서 전개되었으며, 그의 작품들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자연과 개인의 서정을 다룬 순수시의 경향에 가깝다고 하겠다.
한하운은 1949년에 데뷔하여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그의 시는 대개가 나병에서 오는 저주와 비통을 읊은 것으로서 당시의 독자층을 가장 많이 확보한 시인으로도 유명했다. 이와 같이 한하운의 시는 매우 특수한 육체적 조건에 뿌리박혀 한정되어 있기는 하지만, 1950년대의 당시 독자들에게는 깊은 감동과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사람들이 겪었던 고통과 맥이 닿아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나병이라는 천형을 짊어지고, 해방과 전쟁 분단이라는 극심한 정치적 혼란속에서 경제적 궁핍을 가장 밑바닥에서 겪으며 창조해 낸 작품들로 구성되었다. 그러므로 한하운의 나병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1950년대의 역사적인 상황에만 국한되지 않은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정상인으로 살아 갈 수 없다는 절망과 정상인으로 살아가고 싶다는 강한 희구 사이에서, 그가 겪은 고통과 갈등은 보편적인 인간이 지니고 있는 근원적인 고통을 환기시키기도 한다.
반면에 세인들의 관심은 심혈을 기울여 쓴 그의 작품보다도 나병에 걸린 불행한 시인이라는 사실에 집중되었다. 이러한 까닭들은 한하운이 ‘문둥이 시인’이라는 사실 자체가 그의 시를 대할 때 가장 강하게 대상을 압도하는 조건으로 작용했다. 결국 ‘문둥이 시인’이란 천형의 굴레가 생전에도 그를 문단의 주변에만 맴돌게 하였고, 한국 문학사에서도 크게 소외되어 합당한 위상이 정립되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가장 큰 원인은 한하운이 지니고 있는 특수한 육체적 조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부호의 장남으로 태어나 문둥이라는 청천벽력의 선고를 ㅂ다고 거리의 걸인으로 전락한 극적인 생애가 잘 대변해준다. 그리고 그에게 쏠린 호기심과 관심이 당시의 출판 경기를 타고 우후죽순으로 발간된 평전과 해설집, 거기에 덧붙여 시인 스스로 충실하게 기록한 자작시 해설집은 한하운과 그의 시에 관한 충분한 정보와 친절한 해설을 제공한다. 또한 그의 시 대부분에서 경험적 자아와 시적 자아가 분리되어 나타나지 않아, 그의 시를 대하는 대부분의 독자와 연구자들은 풍부한 정보와 자작시 해설이 제공하는 틀로부터 크게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러한 연유들은 결국 한하운에 대한 연구가 천편일률적일 수밖에 없도록 작용하며, 그의 시의 특수성에만 주목한 나머지 시대성과 보편성이 규명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었다.
본고는 한하운 스스로 자작시에 해설을 붙일 수밖에 없었던 연유가 처절한 고통으로 일관된 특수한 육체적 조건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그의 삶을 배제하고 작품만을 대상으로 연구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 그만큼 그는 나병으로 인한 비참한 삶을 살았기 때문에 반드시 생애와 시대적 배경의 연구가 필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한하운의 특수한 삶과 작품의 상호관계를 고찰하여 올바로 인해하고, 그의 시에 내재된 고통의 양상을 파악하며, 그 고통을 어떻게 치유했는지를 집중적으로 살펴볼 것이다. 또한 이와 같은 작업이 한하운의 문학사적 위상을 찾는데 일조하는 일이라고 보고 연구의 목적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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