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삿갓과 한하운 시의 대비적 고찰 : 방랑시를 중심으로
초록 (Abstract)
한국문학사에서 김삿갓과 한하운의 문학적 배경이나 시대적 상황은 서로 다르다. 두 시인은 각자 독특한 세계관을 표출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빛깔과 개성 있는 시를 창작했다. 문학에서 특이성을 개성이라 하고, 개성을 문학의 본질이며 생명이라고 할 때 김삿갓과 한하운 시에 표출된 자학이나 체념, 현실을 긍정하고 체득한 부정 극복이란 개성은 오히려 이들 문학의 독특함을 결정지어준다.
한하운은 김삿갓이 죽은 지 56년 뒤인 1919년에 태어났다. 56년이란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사이가 매우 길게 느껴지는 것은 격동하는 시대의 변화와 두 사람 사이에 가로놓인 선입견이 매우 이질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두 시인의 신분이 상류층이었고, 학문적 깊이가 남달랐으며, 독창적인 시세계와 탄생과 죽음의 우연성이란 상당한 공통점을 지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시인이 특이한 삶을 경험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되었던 방랑에 초점을 두었다.
김삿갓과 한하운은 무엇보다 방랑의 동기는 달랐지만, 두 시인 모두 기인이었던 만큼, 개인의 체험만을 노래한 것이 아니라 삶의 중심부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며, 세속적 욕망을 끊임없이 지워갔던 그 여정만 보더라도 한자리에서 논할 만하다.
본 연구는 세상을 유람하면서 당시사회의 부조리에 대한 회한을 시로써 풍자했던 방랑시인 김삿갓과, 그의 작품들이 독자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고 널리 애송되었지만, 문둥이 시인 한하운이란 문단의 아웃사이더로 살다 간 두 시인의 상관성이 작품에서 어떻게 형상화 되었는지 주제별로 규명하여 바라보고자 한다.
먼저, 김삿갓과 한하운의 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그들의 독특한 삶의 방식이었던 방랑과 작품의 전개양상을 살펴보는 일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하였다. 삶을 이어가는 독특한 방식이었고 방랑이라는 방법 외에는 별 다른 대안이 없던 두 시인에게 세상을 방랑하는 그러한 삶이 그들의 시세계에 있어 직 · 간접으로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향 하에 생겨난 시를 주제별로 크게 세 단계로 구분하여 분석하였다.
첫 번째 주제는 자기부정과 자학을 나타내고 있는 시이다. 방랑초기의 심경들을 보여주는 시들의 특징이다. 두 시인 모두 방랑의 초기단계 시세계는 절망과 부정으로 거역할 수 없는 현실의 벽에 부딪쳐 자학으로 일관하는 모습들이 작품 속에 묻어 있다.
두 번째 주제는 방랑의 과정에서 겪은 생생한 체험을 바탕으로 방랑을 수용과 인식으로 받아들이는 시이다. 자아부정의 시기를 넘어 참담하고 비참한 생활 속에서 질병과 죽음을 넘나들다 현실을 수용하고 삶에 대한 긍정적인 자세로 변화되고 있는 점이 작품에서 드러나고 있다. 운명과 질병과의 끝없는 투쟁으로 불행을 벗어나려는 모습보다는 현실에 순응하고 긍정적으로 변화해 가는 두 시인이 자아를 대하는 자세는 동일하게 나타난다.
세 번째 주제는 자탄과 극복으로 초월하는 시세계이다. 방랑의 오랜 세월에서 적응과정을 지나 스스로의 운명을 극복하고 초월하는 단계이나 김삿갓은 자탄과 후회로 한하운은 극복과 초월이라는 상반된 시세계를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방랑이라는 특이한 삶은 동일했지만, 자탄과 극복의 주제의식만 정반대의 시세계를 구축한 원인으로 첫째, 두 시인의 방랑의 동기와 가치관에서 찾았다. 김삿갓은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에서 방랑을 시작했고, 한하운은 개인적인 질병이었던 나병문제로 방랑을 시작했기 때문에 방랑동기의 해결결과에서 달라졌다.
둘째, 방랑기간의 길고 짧음과 방랑의 여정에서 찾았다. 김삿갓의 방랑기간이 한하운 보다 훨씬 길었으며, 죽음을 어디에서 맞이 했는가하는 문제이다. 편안한 노후와 죽음도 두 시인의 독특한 세계관에 영향을 미쳤다.
셋째 이유는 종교에 귀의 여부에서 찾았다. 김삿갓은 수없이 많은 사찰을 찾아 선문답을 했지만, 종교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한하운은 불교에 귀의하였다. 이렇게 절대자를 향한 귀의 여부에서 초월로 달관한 작품이 나오기도 하고, 갈등과 번뇌로 회환 속에서 돌아보는 작품도 나오게 된다.
조선후기 가장 이단적인 시인으로 현실세계를 넘어 자연에서 초월의지를 획득하고자 했던 김삿갓이었지만, 인간적인 조건에서 결코 도피하지 못하고 개인의 소극적인 가치로 마무리하는데 그쳤고, 역사적으로 민족의 수난시대에 태어나 천형의 고통을 안고 특수한 삶을 살다간 시인 한하운도 방랑을 통해서 삶의 중심으로부터 소외되고 고통받아온 사람들의 목소리를 대변하였지만, 그런 분노와 항변이 사회적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개인적인 절규의 형태에 머무르고 있는 점은 두 시인의 한계로 지적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