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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을 똑바로 보고 참을성 있는 인내심으로 꾸준히 일란하는 굳은 의지의 투쟁의 전진으로서 불행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고고한 생명-나의 슬픈 반생기 후기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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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22~1900 한국보(韓國輔) *자(字) 여필(汝弼) 홍문관 수찬을 지냄 부인 사천 박씨(泗川 朴氏)의 자녀 1849~1918 한희봉(韓熙鳳) 부인 원주 변씨(原州 邊氏) - 한국보(韓國輔)의 자녀 한희기(韓熙夔) / 한희봉(韓熙鳳)의 자녀 1884~1925 한전채(韓甸埰) 부인 장흥 위씨(長興 魏氏) 한희봉(韓熙鳳)의 자녀 한민채(韓敏埰), 딸 두명 / 한전채(韓甸埰)의 자녀 1900~? 한종규(韓鍾奎) 부인 김사엽(金姒曄) - 한전채(韓甸埰)의 자녀 한종유(韓鍾柳), 한종욱(韓鍾郁) / 한종규(韓鍾奎)의 자녀 1921~1975 한태영(韓泰永), 1928~? 한수영(韓秀永) / 한종유(韓鍾柳)의 자녀 한화영(韓華永), 한항영(韓恒永), 한익영(韓益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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